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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sos (14.♡.80.198) 작성일2013-07-29 21:14 조회8,318회 댓글18건

본문

이름: 박정호(Patrick)
가족들과 연락 두절이 되어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보신분이나 아시는분은 연락부탁드리겠습니다.

한국 연락처: 010-2469-2512(동생)
인터넷폰: 070-4606-5833
카톡: ptw111103

댓글목록

그사람아닌가?님의 댓글

그사람아닌가? 아이피 149.♡.11.243 작성일

예전에 여기 글 올라온 겨울아빤가뭔가아닌가요?

ㅇㅇ님의 댓글

ㅇㅇ 아이피 14.♡.80.198 작성일

맞네요 겨울아빠

ㅋㅋ님의 댓글

ㅋㅋ 아이피 114.♡.6.60 작성일

그난리를 치더니 이제 동생이 찾네 ㅋㅋㅋㅋ
이 집안사람들 완전 막장아니었나?

ㅋㅋ님의 댓글

ㅋㅋ 아이피 124.♡.110.224 작성일

맞네 저 ㅅㅂ놈 ㅋㅋㅋ

대박님의 댓글

대박 아이피 49.♡.88.25 작성일

지자식도 아니고 아기엄마랑 부부사이도 아니였다고 하더니 유전자 일치에 부부 맞다고 재판판결 났더구만ㅋㅋㅋㅋㅋ주위얘기들어보면 저ㅅㅂ놈이 아기엄마한테 집착이 심해서 밖에도 못나가게했다하고 좋아 죽어서 물고 쪽쪽 빨았다던데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를 영주권에 팔아넘기는 이 더러운 세상

목사님의 댓글

목사 아이피 58.♡.128.127 작성일

개쌍도 ㅅㅂ 넘
쪽발이 후손들 이완용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상 문재인 박그네 ㅋㅋ
개쌍도 나라 망쳐 놓은 ㅅㅂ 것들

대단님의 댓글

대단 아이피 149.♡.11.243 작성일

가족대단하네. 여기가 어디라고 이 새끼 찾는글을 올리다니.....
니네가족이 어떤지도 이미 다 아는데......대단하네!

흐흐흐님의 댓글

흐흐흐 아이피 112.♡.189.76 작성일

무언가 일을 꾸미나 보죠. 한 사람은 숨기고 또 한 사람은 앞에서 쉴드 치고...

승상님님의 댓글

승상님 아이피 124.♡.110.224 작성일

안녕하세요 저분 절라디언으로 알고있는데 왠개쌍도?? 이 깽깽이 ㅅㄲ야  ㅎㅎ

열사 김재규님의 댓글

열사 김재규 아이피 121.♡.140.31 작성일

아닙니다. 이 눔아는 우리 고향 사람이라예 개쌍도
박정희 빨갱이 원조 여순 반란사건 군사총책 
으로 사형당할꺼 조직 다 불고 지는 혼자 살고
18년 독재 정치 하고 군사쿠테타 까지
매일밤 지 딸보다 어린 대학생들 쪼물닥 거리다
김재규 열사 총알 두방에 꽥 ㅋㅋㅋ 신난다. ㅋㅋㅋ
엔날부터 일본놈들이 왜적질하고 강간해서 쪽발이 피가 많이 섞여지
억양도 비슷하잖아 부산쪽은 ㅋㅋㅋ 쪽발이 피가 흐르는 개 쌍 도

쪽발이개쌍도님의 댓글

쪽발이개쌍도 아이피 121.♡.140.31 작성일

당시 박정희 친인척비리가 불가사의하게도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를 서슴치
않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어도 잡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는 걸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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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박정희의 딸 박재옥부터 알아보자. 사람들이 박근혜가 큰 딸이라고 알
고 있는데 사실은 박재옥이다. 박재옥은
박정희의 첫째 부인 김호남이 낳은 딸이
다. 박재옥은 한병기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한병기는 1931년 평남 안주 출신이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을 하자마자 불과 30살의 나이에 별 경력도
없이 주뉴욕총영사관 영사가 되었다. 35살의 나이에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이 되기도
했다. 선주협회 회장을 지내고 박정희 시절 설악관광케이블카 회장이 되어 지금까
지 지키고 있다.
유엔대사, 캐나다대사를 역임하기도 하고, 공화당 총재특보를 지내기도 했
다.
박정희가 죽자마자 권력에서 멀어졌다. DJP연대로 사촌 동서인 자민련 김종
필 총재가 득세하자, 방송개혁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자문위원장이 되는 등, 조금
고개를 들었다.
이래도 박정희가 친인척을 멀리한 건가?
그 다음에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아들 박재홍을 보자. 그러니까 박정희는 박
재홍의 작은 아버지다.


 

1941년 경북 구미 출신이다. 대구상고, 고려법대를 졸업하였다.
28살의 나이에 포항제철 행정실장이 됐고 32살의 나이에 동양철관 회장이 되
었다. 이거 정상적인 건가??
민정당, 민자당에서 국회의원을 4번씩이나 해 먹었다. 그 후 자민련으로 갔
다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갔다가 국민회의로 건너오는 등 이상한 정치행각을 보여주
었다.또 박정희의 또 다른 형 박상희의 아들 박준홍을 보자.
1947년생이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계성고, 경희대 정외과, 미국 조지워싱
턴대를 졸업하였다. 김종필의 부인 박영옥이 박준홍의 누나다.
불과 서른 살의 나이에 1급 관리관 정무조정실장이 되었다. 요거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가능한 얘긴가? 그러더니 32살 때 그 막강한 대한축구협회장이 되었다.
박정희 사망으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매형 김종필이 만든
자민련에 들어가서 지금도 자민련 경북 구미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촌형인 박재홍과 맞붙기도 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의 친인척 가운데 쓸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안 썼을
뿐이지 쓸만한 사람은 다 갖다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의 오빠, 그러니까 박근혜의 외삼촌인 육인수 같은 경
우에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후에 승승장구하면서 5선 의
원 씩이나 지낸 거 아닌가?
그 육인수의 사위 이석훈은 청주 MBC 사장을 지내고, 충청일보 사장을 거쳐
서 현재 일신산업 회장이다.

김종필 같은 경우에도 박정희가 끔찍이 생각했던 형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의
남편 아닌가? 박정희의 처조카 김종필이 이후락 등과 함께 80년 신군부에 의해서
부정축재한 재산이 환수조치됐는데 그 총 규모가 887억원이다. 25년 전에 887억원
이면... 이건 계산이 불가능한 돈이다.
이래도 박정희가 깨끗하고 청렴한가? 그걸 몰라서 가만히 놔 둔 건가? 박정
희 개인은 절대권력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축재할 필요가 없었을
런지는 모르겠다.
박정희 덕이 아니라면 박근혜가 어떻게 정수장학회를 지배하고 있나? 정수장
학회가 말이 장학회지, 그 규모가 1조 300억원에 이른다. MBC의 30%가 정수장학회
소유다. 부산일보도... 경향신문 사옥 부지도...
박정희의 또 다른 딸 박근영(박서영으로 개명)은 또 어떻게 육영재단 이사장
직을 맡고 있나? 육영재단도 수천억원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무슨 수로 코스닥에서 한방에 46억원 짜리 대박을
치나?이게 청렴한 대통령의 표상이라는 박정희의 모습이다.
게다가 시골에서 농사만 지었다던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딸 박재선을 의사와
결혼시키고, 형 박상희의 둘째 딸 박계옥의 남편 김용태를 그 막강한 대통령 경호
실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그 뿐이랴!!!!
박상희의 세째 딸 박금자를 총리실에서 근무하는 반기언과 혼인시키고, 결정

적으로는 박상희의 막내 딸 박설자를 벽산그룹 창업자 김인득의 아들인 김희용과


결혼시켰다. 김희용은 현재 벽산계열인 동양물산기업 대표이사 회장이다.
이 박설자로 말미암아 박정희 집안이 드디어 그랜드 서클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이 박정희의 조카 박설자의 남편 김희용의 형 김희철이 현재 벽산그룹 회장
이다.김희철의 부인, 그러니까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가 바로 LG그룹의 한 축
인 삼양통상의 창업자 허정구의 딸 허영자다. 이 허영자의 조카사위, 그러니카 허
영자의 남동생의 사위가 바로 조선일보 후계자로 알려진 방준오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한번 가보자. 참 웃기는 거 발견했다.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인 허영자의 오빠가 현재 삼양통상 회장인 허남각이다.
이 허남각의 딸 허정윤이 얼마전에 정대호라는 청년과 결혼을 했는데 이 정
대호가 그 유명한 황해도 재령의 대지주의 아들인 강원산업 창업자 정인욱의 손자
이자, 현재 강원산업 회장인 정문원의 아들이다.
이 정문원의 부인 최금자의 언니가 최금숙이다. 최금숙이 누구냐? 바로 얼마
전에 형제의 난으로 물러난 두산그룹 회장 박용오의 부인이다.
게다가 정문원의 동생이 정도원인데 정도원에게 두 딸이 있다.
큰 딸 지선이는 기아자동자 회장인 정의선과 결혼했다. 정의선은 누구냐? 현
대자동차 정몽구의 회장의 외아들이자 정주영회장의 손자다, 이 말이다.
작은 딸 지윤이는 박성빈이라는 청년과 결혼했다. 이 박성빈은 또 누구냐?
포항제철 박태준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포철 박성빈이랑 현대 정의선이랑 동서가 된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철강산업을 하려고 부지까지 선정하러 다니다가 포기한 배경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 박성빈을 좀 파헤쳐보면 아주 재밌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미안해진다.
양해 바란다.박성빈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다가 요즘 무슨 통신 솔루션 업체인 사운드
파이프 코리아 대표이사로 있다.
이 회사를 가만히 보니까 무슨 다국적 기업인 것 같은데 국내 대리점을 영업
하는 듯 하다. 전자신문같은 걸 보면 꽤 잘 나가는 듯 하다. 잘 나갈 수 밖에 없
다. 예를들면 사운드파이프에서 무선랜 환경을 구축했다는 아산병원은 현대 계열
아닌가??박성빈도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박태준이 국무총리직에 있을 때 드러난 박
성빈의 부동산만도 강남구 역삼동의 170평짜리 카센터와 강남구 신사동의 빌딩 등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한남동에 빌라도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고구마 줄기라고 할 수 없다.
박성빈의 매형 김형수를 주목해야 한다. 김형수는 박태준의 한국화가 딸 박
유아와 결혼을 했는데, 박유아는 본래 변호사 고승덕과 살다가 헤어졌다.
이 김형수는 또 이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맥도널드 사장과 국내에서 일본 도
요다 자동차 렉서스를 수입판매하는 렉서스 케이모터스 대표이사다.
그런데 이 김형수의 부친이 그 유명한 동일고무벨트 창업자인 김도근이다.
이 김도근의 이력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지향적인 것이 분명하다. 통일주체국민회
의 등등 골 때리는 이력이 꽤 많다.
문제는 김도근의 큰 아들이자 김형수의 형인 김진재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박정희시절부터 여기저기 부산지역을 마구 쑤시고 돌아다
녔다. 청년회의소니 부산 싸이클 연맹이니 뭐니 닥치는대로 자리라는 자리는 마다
하지 않았다. 총력안보 부산시 협의회 특별위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부산시
청소년 선도위원도 맡았다.부산 동래구 새마을지도자연합회 고문직도 맡았다.
열심히 하면 위에서 알아보는 법, 전두환이 급조한 민정당 간판을 달고 11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막론하고 내리 5선의원이 되었
다.이 김진재의 아들인 동일고무벨트 기획이사 1972년생 김세연

영남대강탈사건님의 댓글

영남대강탈사건 아이피 121.♡.140.31 작성일

해방, 교육사업에 전 재산 헌납
해방이 되며 식산은행에서 대출 받은 것은 원천무효가 되어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해방 전부터 백산상회 외에도 고려요업, 경성방직, 경남은행 대주주로 사업을 하던 최준은 농지개혁이 되며 농토를 다 내놓았다.
그러나 임야, 과수원 등은 제외되었는데 최준은 1947년 대구지역 지주들과 함께 토지, 현금을 출자해 대구대학을 설립했다. 최준은 남은 재산과 서적 7,200권을 대구대학 설립에 내 놓았다. 종손 최염씨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최준)가 전재산을 대학에 기증하려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으시는데 “재산이 없어지는 게 섭섭하긴 했으나 할아버지 뜻에 따랐다”고 한다.
대구에는 계명대학(설립자 최해청)과 대구대학이 있었는데 5.16 군사 쿠데타는 두 대학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청구대학 설립자 최해청은 1947년 대구시보사 독립운동국장으로 있을 때 대중학술강연을 시작하며 대학 설립을 꿈꿨다. 독립운동국은 “해방 후 일제의 잔재가 다시 고개를 든다”고 최해청과 대구시보사 사장 장인환이 “독립운동의 생활화”를 위해 만든 기구다.
최해청은 1950년 청구대학을 설립해 처음에는 야간대학으로 출발해 개인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못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청구대학은 성장을 거듭하며 경북 지역의 대표 사학이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정권의 대학정비사업으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1966년 재단 경리직원 부정사건이 터졌다. 엎친 데 덮친다고 신축공사장에서 사고가 나 10명이 죽고 30명이 중경상 당하는 당시로서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청구대학 이사진은 사태 수습책으로 대학을 군사정권에 헌납하는 형식을 취했다. 박정희와 친하게 지내는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이 청구대학 교수로 있었던 인연으로 이은상이 나서 박정희를 만났다. 이은상은 “내 고향 남쪽바다”로 시작되는 ‘가고파’를 작사했고 봄이 되면 누구나 한번씩 불러보는 봄처녀도 작사했고 민주공화당 창당할 때 창당선언문 초안도 작성했고 박정희 죽었을 때 추도시도 지었다.
이은상은 박정희에게 “대통령 백 년 할 것도 아니고 그만두면 뭘 하겠나? 회사 사장을 하기에도 우습고, 외국에서는 대개 대학 총장을 한다”고 박정희를 설득했다. 박정희가 생각하기에도 퇴임 후 대학총장 자리는 그럴 듯 했다. 공화당 의원 이동녕, 김성곤, 이후락이 청구대 이사로 등재되어 박정희 영향력 아래 들어 갔다.
뒤이어 대구대학도 ‘대학정비사업’을 피해가지 못했다. 문교부에서는 투자를 더하라고 하는데 최준은 더 이상 투자할 돈이 없었다. 정원감축을 하겠다는 문교부의 통보를 받고 최준은 이사로 있던 신현확에게 운영할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다. 신현확의 주선으로 삼성 이병철을 반도호텔에서 만났다.
최준이 물었다 “고려대학 설립자가 누군가?” “인촌(김성수)선생 아닙니까?” “아니야, 자네가 잘못 알고 있어. 이용익이야.” 이용익은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에 보성학원(고려대학교 전신)을 설립했다. 그후 이용익의 망명과 사망으로 천도교에서 인수해 손병희 선생이 관리하다 독립운동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 학교에서 손을 떼고 인촌에게 넘겼다.
최준은 고려대학교의 예를 들면서 이병철에게 대구대학을 맡아 줄 것을 요청했다. “세상에서 인촌이 고려대학 설립자인줄 알 듯 대구대학이 잘되면 자네 이름이 드러날 것 아닌가.”
대구대학 운영권은 이병철에게 넘어갔으나 이병철은 대학 운영에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러다 이병철을 곤란하게 만든 사카린 밀수 사건이 나고 대구대학은 박정권에게 넘어갔다.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는 “어느 날 이후락이 찾아와 대구대학을 정부에 넘기라고 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카린 밀수로 차남 이창희가 구속되고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며 사카린 밀수 사건의 뒤처리를 하는데 넘기라면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권력으로 대구대학을 빼앗아 갔다.
교육사업의 전재산을 투자해 최부자집에는 더 이상 재산이 없다. 장손 최염은 분당에서 산다. 독립유공자 연금으로 나오는 25만원이 조상들의 재산보다 더 값지다면서. 최준이 독립유공자로 알려진 것은 훗날의 일로 1983년으로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최염은 그 흔한 차 한 대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러면서도 경주 최부자집 종손이라면 사람들이 누구나 인정해 어딜가도 존경받으며 살아온 것이 재산보다 귀한 조상의 음덕이라며 재산은 빈털털이지만 마음은 만석꾼이라며 세상 달관한 듯이 말했다.
-독립운동가 재산과 박정희 박근혜 부녀-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을 강탈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두 대학을 합병해 영남대학교를 만들었다. 당시 재산 가치로 청구대학 20억, 대구대학 15억의 두 대학을 땡전 한푼 안 들이고 가져간 군사정권은 이후락 주도로 합동 이사회를 열고 박정희 최측근과 정권실세로 이사진을 채웠다.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은 이름만 이사로 올려놓고 몇 년 후 아무런 통보 없이 퇴임시켰다.
영남대 문제에 정통한 함종호씨는 “박정희 지시를 받은 이후락을 중심으로 군사정권 실세들이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 양 대학 설립자를 배제한 채 학교를 빼앗아 박정희가 주인이 되는 영남대학을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희가 죽고 6개월 후인 1980년 4월 29세의 박근혜가 영남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강력한 반발을 견디지 못하고 그 해 11월 이사장에서 물러나고 이사직만 유지했다. 그러나 후임 이사장으로 육영재단 이사 류준이 등장해 영남대는 실제로 박근혜 통제하에 있었다.
1988년 11월2일 박근혜를 비롯한 전 이사진이 사퇴할 때까지 8년동안 영남학원은 판공비 불법처리, 장학금 비리, 부정입학, 영남투자금융 비리, 재단 부동산 처분 비리 등 각종 비리가 난무해 비리 백화점을 넘어 비리 종합상사로 승격했다.
영남학원이 비리의 종합상사가 된 것은 박근혜 측근이사인 조순제, 손윤호등 박근혜 그림자인 최태민 일가족 때문이었다. 조순제는 박근혜 비서로 최태민 부인의 전 남편 아들이고 손윤호는 조순제 외삼촌으로 최태민 일가친척들은 모두 동원 되었다.
그 외 박근혜 측근인 김정욱과 곽완석은 업무 분담으로 해 김은 교수채용, 직원 인사문제를 곽은 부정입학을 담당해 비리 종합상사로 발돋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박근혜가 이사로서 처음 한 일은 정통성 확보였다. 정관을 개정해 교주가 박정희라고 못 박았다. 정관 1조: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
영남대에 땡전 한푼 내놓지 않은 박근혜는 박정희가 손에 넣은 장물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미 죽은 박정희를 교주로 추증한 것이다. 박정희 박근혜 부녀가 영남대 재단에 땡전 한푼 내놓지 않았다는 것은 국정감사 기록에 남아 있다. 비리 종합상사 영남학원은 사립으로서는 최초로 국정감사를 받는 신기록을 세웠다.
통일민주당 김동영의원: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재단에 출연한 자금은 얼마입니까?
조일문 재단이사장: 문서상 나타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통일민주당 김동영의원: 다음에 현재 재단이사로 박근혜씨가 되어 있는데, 박근혜씨가 재단 출연한 액수는 얼마입니까?
조일문 재단이사장: 그것도 나타나 있는 것이 없습니다.
(1988년 10월 18일. 문화공보위원회 국정감사)
최준의 장손 최염은 최근에 기자회견을 갖고 박근혜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박근혜가 8년동안 이사로 재직하면서 34건의 부동산을 처분하며 그 중 일부는 시세보다 헐값에 팔았다”면서 조부가 기증한 땅 10만평을 팔 때 평당 시가 50,000원 인 것을 7,600만원에 팔았다”고 밝혔다. 50억 가치 나가는 땅을 단돈 7,600만원에 팔아 치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박근혜는 최준이 기증한 땅을 마구 팔아치워 이젠 조상을 모신 산소도 이전해야할 입장이다. 장손 최염은 이번 음력 10월에도 경주에 내려가 10여군데 산소를 돌며 조상 제사를 지냈다. 산소 앞에는 묘를 이전해 가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30년 이상된 묘소는 허락없이 함부로 이전할 수 없어 강제 이장은 불가능하다.
“후손된 입장에서 조상님들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

들플님의 댓글

들플 아이피 110.♡.238.201 작성일

애쓰지마세요
한국사람들은 좋은리더를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헌금하자님의 댓글

헌금하자 아이피 121.♡.48.86 작성일

십일조 안 내면 교인자격 중지?

한국 예장총회서 논의
입력일자: 2013-08-03 (토) 
한국의 최대 기독교 교단 가운데 하나로 미주에도 소속 교회들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십일조’를 내지 않는 교인에 대해서는 자격을 중지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한국 기독교 매체인 크리스천 투데이 등에 따르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가처분 소득의 10%를 헌금으로 내는 ‘십일조’를 하지 않는 교인에 대해 교인자격을 중지시키는 방안을 포함한 교단헌법 개정안을 논의중이다.

이와 관련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무행정국 관계자는 교단 설립 100주년을 맞아 교단헌법 개정 논의과정에서 십일조를 하지 않는 교인에 대한 교인자격 중지조항이 고려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갸우뚱님의 댓글

갸우뚱 아이피 112.♡.189.76 작성일

저분 브리즈번에선가 대학교 다니지 않나요? 동생분 대학교에 찾아가면 형 찾을 수 있을테데...???

무슬림만세님의 댓글

무슬림만세 아이피 58.♡.74.143 작성일

NSW 이슬람학교 학생 22개교 1만여명
Font Size 14pt

 
15년 사이 학교 3배, 학생 4배 증가
 
  NSW주 초중고 가운데 이슬람 학교와 재학생수가 가장 급속도로 증가하는 가운데 곤스키 자금지원 개혁에 따라 상당한 혜택을 보게 될 전망이다.
 
  NSW주내 아슬람 학교는 지난 15년 동안 3배로 늘어 22개교가 됐으며 학생수는 주내 전체 공립학생 수의 소폭 감소와 달리 10년 새 2배 이상 늘어 1만명을 넘어섰다.
 
  시드니 어번에 있는 알-파이잘 칼리지는 5년 동안 거의 2배로 늘어 1600명으로 증가했다. 지난주 시드니 서부 오스트랄에 600명을 추가 수용할 캠퍼스 건립을 위한 4ha의 부지를 구입, 조만간 주내 최대 독립학교가 될 전망이다.
 
  주내 최대의 이슬람 학교는 말렉 파흐드 이슬람 학교로 현재 3개 캠퍼스에 거의 2500명을 수용하고 있는데 대기자 명단에 추가 접수를 중단시켰다.
 
  그린에이커의 알 누리 무슬림학교는 2008년 이후 70% 이상 증가했고 오스트랄의 유니티 그래마 칼리지는 학생수가 2008년의 196명에서 2012년에는 741명으로 늘었다. 라켐바의 리살라흐 칼리지는 초등학생 정원이 480명 정도로 역시 대기자 명단을 갖고 있다.
 
  지난해 이슬람 학교 재학생수는 1만여명으로 1998년에 비해 4배나 늘었다.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5-14세의 무슬림 어린이는 2006년에서 2011년까지 20% 이상 늘었다. 무슬림 학생 가운데 이슬람학교에 다니는 학생수는 15-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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